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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1987>

nomard-scene 2025. 2. 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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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lt;1987&gt;
1987

1.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영화 속 진실 규명 과정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 사건의 시작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은 서울대 학생 박종철을 체포해 고문실로 끌고 갑니다. 그들은 그에게 운동권 선배의 행방을 실토하라고 강요하며 가혹한 물고문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박종철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결국 그는 고문 도중 사망하게 됩니다. 영화 "1978"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당시 전두환 정권의 폭력적인 공권력과 인권 유린을 세상에 알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경찰은 이를 은폐하려 했지만, 의로운 검사와 기자, 시민들이 진실을 밝히려 하면서 거대한 민주화의 물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쇼크사가 아닙니다." 경찰은 박종철의 죽음을 은폐하기 위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라는 어이없는 발표를 내놓습니다. 그러나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검사 최환(하정우)은 경찰의 부검을 거부하고, 법의학자에게 직접 부검을 의뢰합니다. "이건 쇼크사가 아닙니다. 명백한 타살입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압력이 들어오지만, 최환 검사는 박종철의 사인을 ‘고문사’로 공식 발표하며 사건을 은폐하려는 경찰과 정권에 맞서게 됩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한 사람의 용기가 국가 권력의 거짓말을 폭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최환 검사는 1987년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진실을 보도하라!" 기자들의 취재와 언론의 역할을 보면 신문사 편집국, 한병용 기자(이희준)는 박종철 사건을 취재하면서 정부의 보도 통제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보도하려 합니다. 신문사는 고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걸 보도하면 정권의 압박이 심할 거야." 그러나 한병용은 기사 제목을 "서울대생 물고문 사망, 경찰 발표 거짓!"로 정합니다. 그리고 그날, 신문 1면에 박종철의 죽음이 실리게 됩니다. 이 기사는 곧 전국적인 파문을 일으키고, 시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언론이 진실을 보도할 때, 사회는 변할 수 있다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희망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정부는 언론을 탄압했지만, 일부 기자들은 용기를 내어 탄압을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2. 6월 민주항쟁을 만든 평범한 시민들의 용기

"이제 우리도 행동해야 합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 4월, 박종철 사건 이후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한 후, 정부는 이 사건을 축소하려 합니다. 검사 최환(하정우)의 노력으로 고문치사 사실은 밝혀졌지만, 정부는 이를 경찰 개별적인 실수로 돌리며 윗선의 책임을 철저히 감추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은 "이대로 넘어가면 또 다른 박종철이 생길 거야."라고 말합니다. 또한 교사들도 "우리 학생들이 더 이상 이런 희생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해."라고 말합니다. 노동자들은 "독재 정권이 계속되면, 국민은 계속 억압당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그들은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6월 9일, 또 한 명의 희생이 발생하다." 이한열의 죽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앞 시위 현장 박종철 사건이 일어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전두환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은 연세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게 됩니다. 그러나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강경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대학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한열이 형! 정신 차려요!", "해산하지 않으면 더 강경 진압한다!" 이한열은 끝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의식 불명 상태에서 끝내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 사건은 시민들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고,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라 할 수 있는 것은 박종철 사건 이후, 이한열의 죽음은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국민들은 "이제는 정말 싸워야 한다."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6월 10일, 거리로 나와 독재 타도를 외치다!" 1987년 6월 10일, 전국적으로 시작된 시위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우리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물려줘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겠다!" 대학생, 노동자, 교사, 심지어 회사원들까지 모두 거리로 나와 전국적인 민주화 시위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강경 진압을 지시했지만, 시위 규모는 점점 커져 전국 240여 개 도시에서 6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쟁으로 번졌습니다다. 그들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끝까지 싸웠습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시민들의 연대가 결국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의 결과로 대한민국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회복에 큰 전환점이 됩니다.

3.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역사는 행동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1987>은 단순한 역사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관객을 향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라면 그 시대에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이 영화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검사 최환은 박종철의 사망을 은폐하려는 정권에 맞서는 역할로 등장합니다. 또다른 주인공 기자 한병용은 언론 탄압 속에서도 진실을 보도하는 역할로 등장합니다. 교도관 한병용은 내부 정보를 폭로하며 진실을 밝히려 히는 인물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되찾은 주역들인 대학생들은 거리에서 싸우며 목숨을 아깝지 않게 여기며 민주화를 외치고 또 외칩니다. 뿐 만아니라 평범한 시민들는 폭력적인 공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앞장서는 학생들을 지지하며 어느 순간 그들과 함께 시위를 벌입니다. 이들은 모두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날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장면이 흐릅니다. 거리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우리가 이겼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참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은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우리는 이 희생을 잊지 않고 있는가?" 오늘날 대통령의 친위쿠데타와 그를 아니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법적이고 폭력적으로 사법부를 점검할 뿐 아니라 이를 옹호하는 수많은 세력들을 보며 이 날 숭고한 희생으로 쟁취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너무 초라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 앞에서 <1987>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시금 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결코 한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반드시 지켜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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